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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연대 본부 옛터

모슬포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

기본정보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주서로 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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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9연대 본부 옛터


국군의 전신이랄 수 있는 국방경비대 제9연대는 처음엔 향토연대로 1946년 11월 모슬포에서 창설됐다. 다음해 3월부터 제주도내 청년들을 대상으로 모병하여 1948년 4월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500여 명을 충원했다. 일제시기 일본군이 사용했던 오무라(大村)병사를 그대로 사용했다. 창설 초기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나 1948년 초토화작전이 시행되면서 군경토벌대의 주축이 된다.


그 해 12월 29일, 여순사건을 진압한 2연대로 교체되기 전까지 9연대에는 많은 사건이 있었다. 1948년  4월 28일 소위 4․28평화회담의 주역인 김익렬 연대장이 미군정에 의해 해임되고 박진경 중령이 부임한다. 그리고 육지에서 창설된 11연대가 제주도로 진주하여 주둔하면서 9연대는 11연대로 편입된다. 1948년 5월 20일, 연대 병사 41명이 탈영하여 대정지서(당시 보성리 위치)를 습격한다. 이때 대정지서에서는 5명의 희생자와 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6월 18일 박진경 연대장은 대령으로 승진하고 이날 피로연에서 부하인 문상길, 손선호 등에게 암살된다. 그 해 7월, 11연대가 다시 수원으로 돌아가고, 이후 송요찬이 연대장으로 부임하면서 9연대는 전도적으로 주둔지를 넓히고 2연대로 교체되기 전까지 제주도 토벌대의 핵심이 된다.


1949년 12월 28일 해병대가 진주에서 제주도로 이동하여, 제주읍과 모슬포에 나뉘어서 배치된다. 해병대의 주 활동은 4·3사건의 마무리였다. 도민 계몽활동을 비롯하여, 군의관의 무의촌 순회 진료, 도민들을 통하여 도로보수공사를 하는 등 적극적 원조에 나섰다. 그동안 진행 된 대토벌로 인한 군에 대한 경각심을 없애기 위해 해병대는 나름 도민을 대하는 규칙을 정하여 활동하였고, 신뢰심을 높여 갔다. 이런 와중에 많은 제주도 청년들이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기도 하였다.
 

1950년 7월 15일, 해병대 3개 중대가 우선 한국전쟁 참전을 위하여 제주항을 떠나 군산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7월 16일에는 모슬포경찰서 관내 예비검속 관련 구금자 347명 중 60명이 해병대로 인계되어 집단학살 되었다(장소 미상, 경찰 자료). 그리고 동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새벽 모슬포 주둔 해병 제3대대(대대장 김윤근 소령)에 의해 ‘섯알오름 대학살’이 진행되었다.


1950년 9월 해병대는 제주를 완전히 떠나게 되고 제주에서 훈련시킨 신병 3000여명(3,4기생. 여기에는 여자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최초 여성군인이다)을 1개 연대와 독립 5대대로 편성하여 한국전쟁 당시 거창양민학살, 인천상륙과 서울탈환 등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게 하였다.


9연대 본부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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