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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충혼묘지 4·3추모비(박진경 추도비)

제주시 충혼묘지에 세워진 박진경 대령 추도비.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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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산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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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제주시 충혼묘지 4·3추모비(박진경 추도비)


제주시 충혼묘지에는 제주도민에게 잘 알려진 박진경 대령 추도비가 세워져 있다. 그는 일제시대 일본군의 제주도 방어기지 구축에 참여한 경험으로 제주도의 지리를 잘안다는 사실 때문에 4·3발발 후 진압군 제 9연대장으로 제주도에 부임한다. 당시 그가 부임할 때는 김익렬 9연대장이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는 초토화 작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전출 당한 직후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미육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강경진압작전으로 일관한다. 작전구역내 통행자는 전부 사살할 것, 중산간 부락에 대해서는 고립화, 포위작전을 전개할 것 등 박진경의 명령에 의해 폭도 색출작전 이 전개됐다. 그때부터 무고한 제주도민들은 빨갱이, 빨갱이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무차별 사살되었다. 그가 부임한지 한달만에 6천명의 제주도민의 폭도로 체포되었다. 그는 무고한 제주도민을 빨갱이로 몰아 살해 하였다.


이와 같이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그의 진압정책이 제주도민의 공분을 샀음은 물론이다. 결국 그는 대령승진 축하회가 끝난 직후 그의 부하 문상길 등에 의해 살해되었다.박대령을 암살한 장병들은 법정에서   어린아이를 쏘아죽이고 무자비한 진압명령과 동족살상을 보다 못해 민족을 위한 거사로 그를 살해했다 고 진술했다.


이처럼 박진경 대령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게는 충실한 군인이었을지 모르지만은 당시 제주도민들에게는 공포와 원망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그날의 아픔으로 괴로워 하는 제주도민들에게는  4·3학살 주범의 상징적 존재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더욱 비극적인 일은 박진경을 추모 하기위해 故 陸軍大領 密陽朴公鎭景 追掉碑 를 제주시 충혼묘지에 세웠다. 더우기 그 비문에는 제주도 공비소탕에 불철주야 수도위민의 충정으로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불행히도 장렬하게 산화 하시다. 이에 우리 30만 도민과 군경원호회가 합동하여 그 공적을 기리기위해 비를 세우고 추모의 뜻을 천추에 길이 전한다..... 라고 쓰여 있다.


제주시 충혼묘지 4·3추모비(박진경 추도비)
제주시 충혼묘지 4·3추모비(박진경 추도비)
제주시 충혼묘지 4·3추모비(박진경 추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