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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내

1948년 12월 제주 4.3사건 토벌대의 학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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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기자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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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박성내


박성내는 1948년 12월 21일, 조천면 관내 청년 100여 명이 집단학살 당한 곳이다. 진압군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과거 조금이라도 잘못한 사람은 자수하라. 자수하면 살려주지만 나중에 발각되면 총살을 면하지 못한다. 이미 ‘관련자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협박했다. 자수를 권했다는 사실은 ‘관련자 명단’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지만, 겁에 질린 많은 주민들이 자수했다. 이들은 주로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나 인민위원회에서의 활동, 1947년 경찰관의 3‧1절 발포사건에 항의해 시위를 한 사실, 무장대가 마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을 때 이들의 요구에 따라 시위에 참여하거나 식량 등을 준 사실 등을 자수했다. 그러나 진압군은 약속과 달리 자수자들을 집단 총살했다. ‘자수사건’의 대표적 사례로는 소위 ‘박성내 사건’이 손꼽힌다. '자수사건’이란 과거 자신의 죄를 자백한 사람들을 총살하는 것이다. 조천면 관내에서 자수한 200명을 수용하고 있다가 1948년 12월 21일 “토벌에 따라갈 사람은 차에 타라”고 속여 150명을 제주읍 ‘박성내’라는 하천 변에서 집단 총살한 것이다.


<출처: 4.3진상조사보고서>


희생당하기 일주일전쯤 함덕 주둔 군인들은 와흘리 등 조천면 산간지역에서 피난 온 주민은 물론, 함덕, 신흥, 조천, 신촌리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산에 좁쌀 한 되라도 올린 사람은 자수하라! 그러면 양민증을 발급할 것이고, 나중에 발각되면 총살할 것이다!"고 선전했다. 이에 너도 나도 자수대열에 합류했다. 조천면 일대는 무장대의 세력이 비교적 강하여, 자의든 타의든 조금의 협조를 안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함덕 대대본부로 자수자들이 집결하자, "토벌을 3일 정도 갔다오면 양민으로 살 수 있게 하겠다."며 자수자들을 트럭 3대에 분승시켜 제주농업학교로 향했다. 그 트럭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 몇은, 트럭 짐칸이 꽉 차 더 이상 차에 오르지 못하자 군인들의 발길질에 떨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농업학교에 실려간 자수자들은 일주일 정도 감금되었다가, 1948년 12월 21일 박성내로 끌려가 학살당했다.

 

박성내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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